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-프랑스 관계 (문단 편집) === 20세기 === [[벨 에포크]]를 지나 유럽의 팽창은 내부적인 한계에 부딪치고 [[범슬라브주의]]와 [[범게르만주의]]가 충돌하면서 [[제1차 세계대전]]이 일어난다. 1904년 [[영불 협상]]을 맺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동맹국으로 독일과 싸웠다. 1차 대전 이후 양국은 독일을 비롯한 패전국의 식민지를 나눠 가졌다. 또한 프랑스는 영국과 비밀협정을 체결해서 아랍권국가들을 식민지배할 수 있었다.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hm&sid1=104&oid=308&aid=0000024581|#]] 그러나 19세기부터 쌓여온 [[제국주의]]의 모순과 [[사회진화론]], [[제노포비아]] 등이 결합되면서 1차 대전이 끝난지 불과 20여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에 [[미영불관계|미영프]]와 독일이 체결한 [[베르사유 조약]]의 문제점으로 인해서 극단주의가 사회에 만연했던 독일에서 [[나치]]가 등장하며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다시 일어난다. 이 전쟁에서도 프랑스와 영국은 승리했다. 그러나, 전쟁으로 인해 독일군에게 순식간에 털린 프랑스는 산업 기반이 많이 파괴되었으며 영국도 폭격과 군비 증강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. 이미 19세기 말부터 저력을 쌓아오며 성장한 [[미국]]이 그들을 옛적에 추월했고 본인들이 우습게 보았던 [[러시아]]도 [[소련]]을 거치면서 막대한 공업생산량으로 초강대국이 되었으며, 6.25 전쟁 특수를 시작으로 제대로 탄력이 붙은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고, 독일이 패전 후 막대한 경제 원조를 얻으며 영국과 프랑스를 추월하는 등 이 둘의 국제적 위상은 점점 색이 바랜다.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양국은 식민지들을 안 놓으려고 베트남, 케냐, 알제리 등 식민지에서의 독립운동을 억압하며 식민지 통치를 유지하려고 하였지만, 결국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과 거세지는 식민지들의 독립 운동에 버티지 못해 대부분의 식민지들을 다 독립시키고 경제/정치적으로 위축되기에 이르렀다. 특히 전투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했으나 미국, 소련의 압박으로 인해 이집트에 수에즈 운하를 뺏기게 된 [[2차 중동전쟁]]을 겪으며 영불의 위기의식은 극에 달했고, 그 결과물로서 핵을 개발해 양국 모두 핵 보유국이 되었다. [[영국의 핵개발]]과 [[프랑스의 핵개발]] 참고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